영화 속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은 거짓일까 공룡 입술 논쟁의 모든 것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식자로 군림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외모를 둘러싼 학계의 뜨거운 입술 논쟁과 최신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일반인의 시선에서 담백하고 상세하게 정리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대중문화가 만든 괴수 이미지와 초기 복원도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

우리가 흔히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접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날카로운 이빨이 사방으로 드러난 험악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1993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 주라기 공원 속의 티렉스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비 오는 날 밤 차량을 습격하며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비주얼은 대중들에게 강력한 각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고생물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기 복원도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1910년대에 그려진 초기 티라노사우루스 복원도를 살펴보면 날카로운 이빨이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고 도마뱀이나 뱀처럼 부드러운 피부 조직인 입술에 완전히 덮여 있는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고생물학자들은 거대한 수각류 공룡들이 당연히 현대의 파충류들처럼 치아를 보호할 수 있는 구강 구조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공룡이 대중 매체나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공포감과 경외감을 심어주기 위해 점차 괴수처럼 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룡의 입술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이빨이 흉측하게 노출된 복원도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티렉스의 모습이 100퍼센트 허구이거나 잘못된 고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수각류 공룡에게 입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실제로 공룡 학계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아주 뼈대 깊은 논쟁거리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어느 한쪽으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복원화를 그리는 작가나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는 더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이빨 노출 형태를 채택해 온 것입니다. 어릴 적 공룡 책을 보며 자란 저로서도 티라노사우루스가 입술이 있어 입을 꾹 닫고 있는 모습보다는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언제나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며 발전하는 학문이기에 학자들이 이 잃어버린 입술을 찾기 위해 어떤 근거로 논쟁을 벌여왔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입술 논쟁은 단순히 외형의 문제를 넘어 공룡의 생태와 생리적 특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입술 반대파의 핵심 논리와 악어의 두개골 비교 연구가 지닌 한계점

공룡에게 입술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의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근거는 바로 현존하는 생물들과의 계통학적 거리였습니다. 고생물을 복원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정석적인 방법은 현재 살아있는 동물 중에서 그들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아 비교하는 것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속한 수각류 공룡과 계통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생 동물은 바로 새와 악어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조류는 이빨 자체가 퇴화하여 부리를 가지고 있고 악어는 입을 다물어도 위아래 이빨이 교차하며 밖으로 완전히 노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입술이라고 부를 만한 조직이 전혀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에 기반하여 많은 학자들은 수각류 공룡 역시 악어처럼 입술이 없이 이빨이 항상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압도적인 이빨 크기에 주목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은 뿌리까지 포함하면 최대 길이가 30센티미터에 달하며 잇몸 밖으로 드러난 전장만 해도 무려 15센티미터에 육박합니다. 이렇게 거대하고 굵은 이빨을 입안에 완벽하게 수납하고 덮을 수 있는 입술 조직이 존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뇌피셜에 가까운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에 입술 반대론자들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의 카시디 대학 소속이자 세계적인 티라노사우루스류 전문가인 토마스 카 교수는 티렉스의 가까운 친척 뻘인 다스플레토사우루스의 두개골 표면 화석을 미세하게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다스플레토사우루스 턱뼈 표면의 질감이 현대 악어의 두개골 질감과 매우 유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악어의 경우 성장 과정에서 피부 조직의 일부가 뼈 조직으로 변하는 고화 현상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두개골 표면에 거칠고 울퉁불퉁한 특유의 패턴을 남기게 됩니다. 토마스 카 교수는 두개골 표면의 뼈 질감은 그 위를 덮고 있던 피부 조직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두 동물의 두개골 질감이 이토록 유사하다는 것은 티라노사우루스류의 입 주변 피부 조직 역시 악어와 거의 똑같았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들도 악어처럼 딱딱하게 고화된 피부를 가졌을 뿐 입술 없이 이빨이 상시 노출된 상태로 생활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는 뼈에 남은 흔적이라는 명확한 물리적 증거가 제시되었으니 입술이 없었다는 쪽으로 결론이 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어처럼 거칠고 단단한 얼굴을 한 채 사냥감을 노려보는 티렉스의 모습이 과학적 진실에 가깝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입술 찬성파의 반격과 턱뼈 구멍의 개수가 밝혀낸 구강 구조의 비밀

그러나 과학계의 논쟁은 그리 만만하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7년의 연구 결과에 대해 척추 고생물학자인 마크 위튼 박사를 필두로 한 입술 찬성파 학자들이 격렬한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마크 위튼 박사는 먼저 이빨이 너무 길어서 입술로 덮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현대 생물 중에서도 몸집 대비 엄청나게 긴 송곳니를 자랑하는 맨드릴 원숭이나 구름표범 그리고 입 밖에 튀어나올 정도로 거대한 치아를 지닌 낙타 등의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이 동물들은 치아의 크기나 길이와 상관없이 평소에는 이빨을 완벽하게 감싸는 유연한 입술 조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빨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입술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류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나아가 고생대 포식자였던 이노스트란케비아나 신생대의 상징적인 맹수인 스밀로돈 같은 검치호들 역시 기존의 과장된 복원도와 달리 실제로는 거대한 송곳니 대부분이 입술 속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마크 위튼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두개골 질감이 악어와 비슷하다는 토마스 카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컴퓨터 단층촬영 등 정밀 분석을 통해 실제로는 두개골 표면 부위마다 질감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악어의 획일적인 패턴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입술 찬성파는 2009년 워싱턴 주립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애슐리 모아르 박사가 발표한 동물 턱뼈의 신경 혈관 구멍 연구를 핵심 반박 근거로 끌어들였습니다. 모아르 박사는 다양한 척추동물의 턱뼈에 뚫려 있는 미세한 구멍들의 개수와 입술 조직 유무 사이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밝혀낸 바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턱뼈 구멍의 개수가 50개 미만인 동물들은 사람이나 포유류처럼 근육이 있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매우 유연한 입술을 가집니다. 그리고 구멍의 개수가 50개에서 100개 사이인 동물들은 유연하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치아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덮어 보호하는 고정된 입술 조직을 갖게 됩니다. 반면 턱뼈 구멍이 100개 이상으로 무수히 많이 분포하는 동물들의 경우에는 입술 조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해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입술이 없는 대표적인 동물인 악어의 경우 턱뼈에 난 구멍이 무려 천 개에 육박할 정도로 빽빽합니다. 반면 티라노사우루스의 턱뼈 구멍을 전수 조사한 결과 최대 81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마크 위튼 박사는 이 명확한 수치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대 수각류 공룡들이 악어처럼 백 퍼센트 노출된 구강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비록 포유류처럼 립스틱을 바르듯 실룩거릴 수는 없었을지언정 치아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온전히 덮어주는 단단한 입술 조직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구멍의 개수라는 정량적인 데이터가 제시되자 제 마음도 서서히 입술이 있었을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언스지 최신 논문과 이빨 법랑질 마모 분석이 종지부를 찍다

오랜 시간 평행선을 달리던 이 학계의 대논쟁은 마침내 2023년 3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역사적인 논문이 발표되면서 입술 찬성론 쪽으로 무게추가 급격하게 기울게 되었습니다. 미국 오번 대학교의 토마스 쿨렌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아주 기발하고도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는데 그것은 바로 화석화된 이빨 표면을 감싸고 있는 법랑질의 상태를 미세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치아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는 법랑질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 중 하나이지만 수분이 전혀 없는 건조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극도로 취약해져 마찰에 의해 쉽게 마모되고 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육상 동물들은 입술을 통해 구강 내부의 촉촉한 침과 수분을 유지하며 이빨 법랑질을 보호합니다. 반면 입술이 없는 악어의 경우 일상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내는 반수생 생물이기 때문에 주변의 물 덕분에 법랑질이 수분을 공급받음에도 불구하고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동안 상시 공기에 노출되는 특성 때문에 법랑질 표면의 미세 마모와 손상이 굉장히 심하게 일어납니다. 악어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평생 동안 이빨이 끊임없이 빠지고 새로 자라나는 짧은 이빨 교체 주기를 진화시켰습니다. 토마스 쿨렌 교수 연구팀은 실제 티라노사우루스와 다스플레토사우루스의 이빨 화석을 채취해 법랑질 상태를 정밀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거대 공룡들의 이빨 법랑질은 현대 악어보다 훨씬 두께가 얇았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에 모래나 먼지 건조한 공기에 의해 마모된 흔적이 거의 없이 자라난 그대로의 깨끗하고 매끄러운 상태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아생전 아프리카 사바나나 울창한 숲속 같은 육상 환경에서 활동할 때도 이빨이 외부 공기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수분을 머금은 입술 조직이 방패처럼 이빨을 항상 덮고 보호해 주었음을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스모킹 건이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진은 수각류 공룡의 위턱뼈에 있는 신경과 혈관이 지나가는 통로의 배열 패턴도 정밀 조사했는데 이 패턴 역시 입술이 존재하는 현생 왕도마뱀이나 바다이구아나와 소름 돋을 정도로 나란하고 일치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반면 두개골 전체에 사방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악어의 신경관 배열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학자들은 또한 도마뱀의 두개골 길이 대비 이빨 길이의 비율을 통계 그래프로 그려 공룡과 비교했는데 티라노사우루스는 입술이 있는 현생 도마뱀들과 정확히 동일한 선상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대의 체스보드 뱀류처럼 입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긴 치아를 가진 뱀도 입술 속에 이빨을 잘 숨기고 산다는 점을 들며 이빨이 길어서 입술이 없었을 것이라는 과거의 추측을 완전히 종식시켰습니다. 물론 토마스 카 교수를 비롯한 일부 입술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이 연구 결과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고 자신들의 학설을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도 미세한 공방은 이어지겠지만 현재 고생물학계의 거대한 주류 의견은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단정한 입술이 있었다는 쪽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결국 중생대 지구를 호령했던 폭군 도마뱀은 영화 속 괴물처럼 이빨을 흉하게 드러낸 모습이 아니라 입을 다물었을 때는 이빨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오히려 현대의 코모도왕도마뱀을 닮은 거대하고 묵직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우리가 오랜 세월 믿어왔던 공룡의 얼굴을 이토록 새롭고 흥미롭게 바꾸어 놓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 뛰는 경험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티라노사우루스를 떠올릴 때 이빨 가득한 괴물 대신 단정하게 입술을 다문 진짜 자연 속 생명체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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