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해양 생물들의 생존과 멸종 비밀을 밝히다

중생대 바다를 지배했던 암모나이트와 겉모습이 매우 유사한 앵무조개의 서로 다른 운명을 비교하며 백악기 대멸종 시기에 발생한 생태적 변화와 생존 전략의 차이를 상세히 분석합니다. 높은 신진대사율과 생태적 전문화로 인해 환경 변화에 취약했던 암모나이트의 멸종 원인과 깊은 바다에서 낮은 신진대사율을 유지하며 살아남은 앵무조개의 지혜를 통해 자연계의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심오한 진리를 전합니다.


암모나이트와 앵무조개의 계통학적 차이와 신비로운 껍데기 구조의 비밀

우리가 흔히 박물관이나 화석 도감에서 자주 접하는 암모나이트는 공룡과 함께 중생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생물 중 하나입니다. 워낙 그 생김새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나선형 껍데기를 가지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나 수족관에서 움직이는 앵무조개를 보았을 때 그것이 암모나이트가 대멸종을 피해 살아남은 직접적인 후손일 것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저 역시도 어릴 적에는 두 생물이 완전히 같은 종류이거나 조상과 후손의 관계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둘은 두족류라는 거대한 분류 체계에 함께 속해 있을 뿐 실제로는 계통도 상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전혀 다른 생물군입니다. 두족류는 크게 앵무조개아강과 국서가강 그리고 초형아강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맛있게 먹는 오징어와 꼴뚜기는 초형아강 중에서도 십완상목에 속하고 지능이 높기로 유명한 문어나 낙지는 팔완상목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암모나이트는 국서가강이라는 독자적인 그룹에 속해 있으며 앵무조개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앵무조개아강에 속해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국서가강의 모든 생물은 완전히 전멸하여 화석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반면 앵무조개아강에서는 앵무조개목 앵무조개과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현재 전 세계에 단 두 개의 속과 여섯 종만이 그 명맥을 위태롭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통도를 더욱 면밀히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암모나이트는 겉모습이 흡사한 앵무조개보다 오히려 외형이 완전히 다르게 생긴 문어나 오징어와 유전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 친척 관계에 있습니다. 비록 계통은 이렇게 다를지라도 단단한 탄산칼슘 껍데기를 온몸에 두르고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두 생물을 겉에서만 보면 일반인의 눈에는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구조적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껍데기의 내부 구조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바로 껍데기 내부를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개어 나누어 주는 격막의 형태에 있습니다. 앵무조개의 격막은 연약한 몸통이 위치한 바깥쪽 입구를 향해 전체적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드러운 곡선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암모나이트의 격막은 바깥을 향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거나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한 물결 모양을 그리며 발달해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물학자들이 꼽는 가장 결정적이고 명확한 차이점은 부력을 조절하는 핵심 기관인 연실세관의 위치에 있습니다. 앵무조개의 내부를 잘라보면 격막의 정확히 한가운데인 중앙을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져 있는 연실세관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가느다란 관은 삼투압 원리를 이용하여 껍데기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체액을 몸 안으로 흡수하거나 반대로 기체를 껍데기 방으로 다시 내보내면서 물속에서 떠오르고 가라앉는 부력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잠수함의 밸러스트 탱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에 암모나이트 역시 동일한 기능을 하는 연실세관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위치가 격막의 중심이 아니라 껍데기의 가장 바깥쪽 외벽을 따라 치우쳐서 길게 이어져 있다는 구조적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미세한 구조적 차이가 결국 수억 년의 세월 동안 이들의 생존과 수영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 이어진 혹독한 대멸종의 역사와 표준화석의 가치

지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암모나이트가 중생대의 지배자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지구 과학적 사실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점은 앵무조개가 암모나이트보다 훨씬 더 오랜 고대의 시간 속에 등장하여 지구를 지켜온 대선배라는 사실입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암모나이트가 훨씬 높지만 사실 앵무조개는 무려 고생대 캄브리아기 후기인 약 4억 9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살아있는 화석의 대명사로 불리는 실러캔스보다도 훨씬 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수치이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커다란 형태 변화 없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 자체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그에 반해 암모나이트는 이보다 훨씬 늦은 고생대 데본기인 약 4억 천만 년 전에야 비로소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두 생물의 아주 먼 초기 조상들과 원시적인 친척들은 지금처럼 돌돌 말린 모양이 아니라 대나무처럼 길쭉하고 뾰족한 직선 형태의 껍데기를 지니고 바다를 누볐습니다. 그러나 고생대 바다에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거대한 원시 어류들과 강력한 해양 포식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연약한 몸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물속에서 보다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 껍데기가 둥글게 말리는 방향으로 강력한 자연선택의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진화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멋진 소용돌이 모양의 껍데기를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생물은 고생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 지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재앙으로 손꼽히는 데본기 대멸종을 무사히 넘어섰으며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 이상이 전멸하여 극악의 생존 난이도를 자랑했던 페름기 대멸종마저 꿋꿋하게 버텨내며 중생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중생대에 접어들면서 앵무조개와 암모나이트의 행보는 완전히 엇갈리게 되는데 앵무조개가 조용히 현상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암모나이트는 중생대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나 그야말로 폭발적인 번성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생대에 처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암모나이트가 중생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으로 널리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지층의 연대를 파악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화석을 외우며 암모나이트 이름을 연신 받아 적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은 암모나이트의 껍데기 표면에 새겨진 봉합선의 모양을 분석하면 해당 지층이 중생대 중에서도 정확히 어느 시기에 형성되었는지를 아주 세부적이고 정밀하게 판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듯이 암모나이트의 내부 격막은 맨 바깥쪽의 단단한 겉껍질과 서로 맞닿아 접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무늬를 남기게 되는데 이를 봉합선이라고 부릅니다. 이 봉합선은 시대가 흐를수록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특성을 보여줍니다. 고생대에 살았던 아주 원시적인 암모나이트들은 아주 매끄럽고 단순한 형태의 봉합선을 그리고 있으며 중생대의 서막을 연 트라이아스기의 암모나이트들은 이보다 조금 더 구불구불하고 복잡해진 문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룡들의 전성기였던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이르러서는 마치 나뭇잎의 정교한 인맥이나 해안선의 복잡한 리아스식 지형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기하학적 봉합선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명확한 형태적 진화의 단계 덕분에 암모나이트 화석은 고생물학자들에게 지층의 세부 연대를 알려주는 가장 완벽하고 가치 있는 타임캡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찬란한 번영을 누리며 중생대 바다를 가득 메웠던 수많은 암모나이트들은 약 6,600만 년 전 지구를 뒤흔든 거대한 대재앙을 기점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며 영원한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조용히 숨죽여 지내온 앵무조개는 그 가혹한 운명의 날을 무사히 버텨내고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비록 계통은 서로 다를지라도 외형과 생김새가 이토록 비슷했다면 바다 생태계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생태적 지위 역시 매우 비슷했을 텐데 도대체 왜 한쪽은 완전히 절멸하고 다른 한쪽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볼수록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게 됩니다.


백악기 대멸종의 문턱에서 갈린 운명과 신진대사율의 부메랑

중생대 백악기에 이르러 암모나이트는 그야말로 진화의 정점을 찍으며 엄청난 종분화를 거듭했습니다. 바다 환경에 맞추어 온갖 기괴하고 독특한 타래 모양을 지닌 종부터 시작해서 껍데기 지름이 무려 1.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 같은 녀석들까지 등장하며 무려 다섯 개 이상의 거대한 목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어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앵무조개는 번성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저 고작 앵무조개아목이라는 단 하나의 초라한 계통만을 유지한 채 먼 과거 조상들이 살았던 방식 그대로 조용하고 단순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인 닐 랜드맨 박사는 이처럼 두 생물의 운명을 가른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던 중 이들의 신진대사율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랜드맨 박사 연구팀은 화석에 남아있는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고대 암모나이트의 신진대사율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 결과 암모나이트의 신진대사율이 동시대에 살았던 앵무조개보다 최소 두 배에서 세 배 이상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신진대사율이 높다는 것은 체내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순환시키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신체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후손을 낳는 번식 주기 역시 매우 짧아진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실제로 현대의 앵무조개가 알에서 깨어나 완전한 성체로 다 자라기까지 무려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걸리는 반면에 고대의 암모나이트는 높은 대사율 덕분에 평균적으로 고작 4년에서 6년 정도만 지나면 곧바로 번식이 가능한 성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빠른 성장과 번식력 덕분에 암모나이트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대를 이어가며 수많은 돌연변이와 종분화를 정력적으로 일으켜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백악기 들어 지구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이들의 높은 신진대사 활동에 엄청난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고 이는 암모나이트가 바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다채로운 종으로 다양해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번영의 열쇠는 결국 기후 격변의 순간에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는 독이 든 성배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약 6,600만 년 전 유카탄반도에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지구의 환경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충돌의 충격으로 대기권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간 수많은 황산화물과 먼지들은 태양 빛을 완전히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강력한 산성비를 뿌려댔습니다. 그 결과 거대한 바다는 상층부부터 시작해서 점차 급격한 산성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양 산성화는 주로 바다의 표층과 얕은 바다에 모여 살던 암모나이트들에게는 온몸을 녹여버리는 치명적인 독극물 투하와 다름없는 재앙이었습니다. 탄산칼슘 성분으로 이루어진 암모나이트의 아름답고 정교한 껍데기들은 강한 산성 양상을 띠는 바닷물 속에서 방어 기제를 작동할 틈도 없이 속절없이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껍데기가 녹아내리는 물리적인 피해보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진짜 재앙은 바로 먹이사슬의 붕괴로 인한 극심한 굶주림이었습니다. 암모나이트는 주로 햇빛이 잘 드는 바다 표층에 서식하면서 풍부한 플랑크톤이나 작은 갑각류 등을 활발하게 잡아먹으며 높은 신진대사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해양 산성화와 태양광 차단으로 인해 바다 생태계의 기초를 지탱하던 플랑크톤의 개체수가 단시간에 전멸에 가깝게 급감하자 암모나이트들은 자신들의 거대한 덩치와 높은 신진대사율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성능 스포츠카가 연료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멈춰 서듯 높은 대사율을 자랑하던 암모나이트들은 먹이 고갈의 직격탄을 맞고 빠르게 굶어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철저히 소외당하던 앵무조개의 낮은 대사율과 생존 전략은 암흑의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앵무조개들은 평소에 햇빛이 닿지 않는 평균 300미터에서 400미터 깊은 곳에 살았으며 깊게는 수압이 엄청난 700미터의 심해까지 내려가 생활하고 있었던 덕분에 소행성 충돌 여파로 발생한 표층 바다의 급격한 산성화와 온도 변화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원래부터 신진대사율이 아주 낮게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해의 차가운 환경 속에서 에너지를 극도로 아끼며 적은 양의 먹이만으로도 수개월 이상을 거뜬히 버텨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살아있는 플랑크톤이나 신선한 먹이만을 고집하던 암모나이트와는 달리 바다 위쪽에서 죽어서 가라앉는 동물의 사체나 유기물 부스러기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청소부 같은 식습성을 가지고 있었던 점 역시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 찬 대멸종의 시기에 최고의 생존 무기로 작용했습니다. 생명체의 번식 방식에 있어서도 두 생물의 명암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암모나이트들은 지름이 고작 0.5밀리미터에서 2.6밀리미터에 불과한 아주 작고 연약한 알들을 바닷속에 그냥 둥둥 떠다니는 부유성 형태로 무책임하게 방출하며 번식을 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어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억 개의 암모나이트 알들은 산성화된 표층 바닷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부화하기도 전에 껍질이 녹아내려 전멸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앵무조개는 직경이 약 3센티미터에 달하는 아주 크고 단단한 알을 낳았으며 이를 조류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깊은 해저의 단단한 바위 틈새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부착하는 형태로 번식을 진행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심해의 안전한 환경 속에서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채 보호받았던 앵무조개의 알들은 대멸종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아 부화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들은 파괴된 지구 환경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대를 이어 위대한 생존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었습니다.


생태적 전문화의 함정과 현대 앵무조개가 직면한 새로운 위기

여기서 우리는 고생물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주 흥미롭고 깊은 의문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무리 암모나이트가 대멸종 환경에서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중생대 바다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종으로 번성하여 널리 퍼져 있었다면 확률적으로 그 수많은 종류 중에서 단 한두 품종이라도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깊은 바다로 도망쳐 대를 이어 살아남았을 확률이 조용히 살던 앵무조개보다 훨씬 높은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이 대목을 보며 다양성이 높은 생물군이 멸종에 더 강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물 진화학의 아주 거대한 오해와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특정 생물 집단이 급격한 환경 변화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종분화를 거치며 진화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생태적 전문화라는 현상입니다. 생태적 전문화란 수많은 무리가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는 생존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섭취하는 먹이의 종류와 서식하는 공간의 범위를 최대한 정밀하게 쪼개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즉 각자의 종들이 특정 먹이나 특정 수심 그리고 아주 미세한 환경 조건에만 100퍼센트 완벽하게 부합하도록 극단적으로 최적화되는 진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평화로운 환경에서는 이러한 전문화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최고의 스마트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행성 충돌이나 대멸종과 같이 기존의 생태계 판도가 통째로 뒤바뀌는 거대한 환경 변화가 들이닥쳤을 때 이 극단적인 전문가들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취약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빗대어 조금 쉽고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하얀 종이 위에 연필만을 사용하여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데 평생을 바쳐 완벽하게 최적화된 마스터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옆에는 오직 전통 붓만을 잘 쓰는 사람 두꺼운 유성 매직펜만을 잘 쓰는 사람 그리고 만년필의 섬세한 획만을 다룰 줄 아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모든 종이와 필기구가 불타서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디지털 태블릿과 맨손가락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낯설고 가혹한 새로운 환경이 찾아왔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기존의 특정 도구와 아날로그 환경에만 극단적으로 전문화되어 있던 모든 마스터는 새로운 디지털 태블릿 환경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채 손가락 한번 제대로 놀려보지도 못하고 도태되어 무대 뒤편으로 쓸쓸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중생대 말기 바다를 가득 채웠던 암모나이트들의 상황이 정확히 이와 같았습니다. 높은 신진대사율과 풍요로운 환경 덕분에 바다의 각 영역을 완벽하게 장식한 수많은 천재적인 생태계 전문가들이 탄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성원 모두가 지나치게 한 분야에만 치우친 전문가였던 탓에 기존 생태계의 판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대멸종의 문턱을 그 누구도 넘어서지 못하고 집단으로 몰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진화의 역사가 보여주는 가장 슬프고도 기묘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려 3억 5천만 년이라는 유구하고 찬란한 세월 동안 지구 바다를 호령하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던 암모나이트는 백악기 말기를 끝으로 지구의 역사책에서 영원히 퇴장하여 차가운 돌 속의 화석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특별한 전문화도 없이 그저 묵묵하고 투박하게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하며 생존의 미학을 실천해 온 앵무조개는 운 좋게 살아남아 전 세계 바다에서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자연계의 흐름 속에서 이 불사조 같은 앵무조개 역시 최근 들어 새로운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약 2,800만 년 전인 신생대 올리고세 후기부터 지구상에서 앵무조개가 살 수 있는 서식지의 면적이 급격하고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오늘날에는 고작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주변의 일부 따뜻한 해역에만 한정되어 간신히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고생물학자들은 막연하게 지구에 찾아온 극심한 빙하기와 이로 인한 전 세계 해류 흐름의 대대적인 변화 때문에 앵무조개의 서식지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스웨덴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세계적인 석학 주테판 킬 박사는 아주 새롭고 흥미진진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킬 박사는 화석 기록을 면밀히 대조한 결과 올리고세 후기인 약 2,800만 년 전 북미 대륙 연안에서 오늘날의 물범과 물개 그리고 바다사자의 조상에 해당하는 초기 기각류들이 역사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강력하고 영리한 포식자인 초기 기각류들이 번성하면서 북미를 넘어 유럽과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해안가 쪽으로 영역을 무섭게 넓혀 나가기 시작한 구체적인 시점들과 각 지역의 지층에서 앵무조개 화석이 마법처럼 씻은 듯이 사라진 시점이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놀라운 상관관계를 밝혀낸 것입니다. 킬 박사는 이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단단한 껍데기를 가졌지만 수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둔한 앵무조개들이 새롭게 등장한 날렵하고 강력한 포식자인 초기 기각류들의 이빨 좋은 사냥감이자 영양가 높은 먹잇감으로 완벽한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며 결국 이들 기각류의 대대적인 번성과 확산이 앵무조개의 서식지를 오늘날의 좁은 구역으로 밀어내고 축소시킨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아직은 학계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하나의 매력적인 가설 단계이긴 하지만 지구 생태계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정교하고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장대한 생명의 역사와 진화의 드라마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자연계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으며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환경 앞에서는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거대한 진리를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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