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 하는 박쥐가 없는 이유

하늘을 나는 동물의 대명사인 새들 중에는 타조나 펭귄처럼 비행을 포기한 종이 많지만,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박쥐 중에는 왜 날지 못하는 종이 없을까요? 5,200만 년이라는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도 박쥐가 비행 능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신체적 비밀과 독특한 생태적 이유가 있습니다.


새와는 다른 박쥐만의 일체형 신체 구조

타조나 펭귄, 키위새처럼 날지 못하는 새들은 진화 과정에서 수없이 등장했습니다. 새들은 날개와 뒷다리가 신체적으로 잘 분리되어 있어, 비행을 포기하더라도 걷거나 헤엄치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박쥐의 몸은 마치 일체형 슈트를 입은 것처럼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피막이 팔과 옆구리를 지나 뒷다리 발목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박쥐의 날개는 단순한 비행 도구가 아니라 뒷다리의 움직임과도 직결된 전신 기관인 셈입니다. 이 때문에 날개가 퇴화하는 순간 걷는 능력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가 비행에 최적화된 하나의 거대한 기관으로 설계되어 있어, 날지 못하는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걷고 달리는 능력을 재발명한 박쥐들

대부분의 박쥐는 육지에서 걷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지만, 예외적으로 땅 위를 꽤 잘 누비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흡혈 박쥐와 뉴질랜드의 작은 짧은 꼬리 박쥐(페카페카)입니다. 흡혈 박쥐는 소나 말 같은 가축에게 은밀히 접근하기 위해 걷는 능력이 필요했고, 심지어 앞다리를 이용해 점프하듯 뛰는 '바운딩 보법'까지 구사합니다. 반면 뉴질랜드 짧은 꼬리 박쥐는 날개막을 특수한 피부 주머니에 접어 넣고 땅 위를 걸어 다니며 곤충이나 꽃을 먹습니다. 이들은 먹이 활동 시간의 30%를 지면에서 보낼 정도로 보행에 능숙합니다. 과거 뉴질랜드에 천적인 육상 포식자가 없었던 환경 덕분에 이들은 마치 섬의 새들처럼 육상 생활에 적응하며 걷는 능력을 다시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5,100만 년 전부터 이어진 비행과 보행의 병행

놀라운 점은 이렇게 잘 걷는 박쥐들조차 결코 비행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호주에서 발견된 5,100만 년 전 고대 박쥐 화석인 '이카로포스 아나'는 이미 현대의 짧은 꼬리 박쥐처럼 걷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수천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땅 위를 걷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쥐는 여전히 날개를 유지하며 비행 능력을 퇴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는 박쥐에게 있어 하늘을 나는 능력이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먹이 활동의 70% 이상을 책임지는 생존의 핵심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19세기 영국이 들여온 외래종(쥐, 고양이) 때문에 뉴질랜드 짧은 꼬리 박쥐의 육상 생활이 위기를 맞으며 진화의 방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박쥐의 신체 구조상 비행 능력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미래에는 날지 못하는 박쥐가 등장할까

생물학자인 두걸 딕슨은 그의 저서 '인간 이후'에서 '나이트 스토커'라는 가상의 미래 생물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키가 1.5m에 달하고 날개는 완전히 퇴화했으며 오로지 초음파로만 먹이를 찾는 날지 못하는 육식성 박쥐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상의 산물이지만, 박쥐가 가진 신체적 제약을 고려할 때 이 정도로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아는 '박쥐'의 범주 내에서 비행을 포기한 종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쥐는 1,400여 종으로 분화하며 전 세계 포유류의 20%를 차지할 만큼 번성한 집단입니다. 이들이 전 세계 외딴 섬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강력한 비행 능력에 있었습니다. 생명의 강인함이 깃든 박쥐의 날개는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들만의 가장 강력한 생존 훈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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